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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와 식사하는 날 – 멕시코 ‘디오스 데 로스 무에르토스’

by 정보주머니1 2025. 6. 8.

죽은 자와 다시 만나는 축제, 디오스 데 로스 무에르토스란?


죽음은 슬픔과 이별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멕시코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디오스 데 로스 무에르토스(Día de los Muertos)', 즉 '죽은 자들의 날'은 해마다 11월 1일과 2일에 걸쳐 열리는 멕시코의 전통 축제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죽은 가족과 친구들이 이승으로 돌아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믿는다. 이들은 결코 멀리 떠난 존재가 아니라, 해마다 돌아와 우리 곁에서 함께 웃고 먹고 노는 존재다.

디오스 데 로스 무에르토스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멕시코 사람들의 삶의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문화현상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순환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이 축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축제는 선조 숭배, 가톨릭 교리, 아즈텍 문화가 혼합되어 형성된 독특한 혼종 문화의 산물이다. 특히 아즈텍 시대에는 죽은 이의 영혼이 여행을 떠난다고 믿었으며, 이 영혼들이 무사히 여정을 마칠 수 있도록 음식과 꽃, 기도를 바쳤다.

이 축제를 통해 멕시코인들은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뿐 아니라, 죽은 자들과의 정서적 연결을 확인한다. 이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함께 존재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슬픔이 아니라 축제와 환희로 죽은 자를 맞이하는 멕시코식 장례 문화는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만든다.

무덤 앞의 만찬과 오프렌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식탁

디오스 데 로스 무에르토스(Día de los Muertos)의 핵심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이 축제에서 가장 상징적인 풍경은 바로 ‘무덤 앞의 만찬’‘오프렌다(ofrenda)’라 불리는 제단이다. 이 둘은 멕시코 사람들이 죽은 이를 어떤 존재로 대하고,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살아 있는 가족과 죽은 가족이 함께 먹고, 마시고, 웃으며 하루를 보내는 장면은 디오스 데 로스 무에르토스를 단순한 명절이 아닌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문화적 의식으로 자리 잡게 했다.

🕯️ 오프렌다, 죽은 이를 맞이하는 따뜻한 제단
오프렌다는 멕시코 전역에서 가정마다, 거리마다 볼 수 있는 작은 제단이다.
죽은 이의 사진을 중심으로 그의 이름표, 좋아하던 음식, 즐겨 마시던 술이나 음료, 그리고 밝게 빛나는 초, 마리골드 꽃(센파수칠), 설탕 해골(Calaveras de azúcar), 개인적인 유품 등을 정성스럽게 차려놓는다.

마리골드는 특히 이 축제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주황빛의 강렬한 색과 독특한 향을 가진 이 꽃은 죽은 이의 영혼이 길을 잃지 않고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오프렌다 주변에는 이 꽃잎을 이어 붙여 영혼의 길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향과 색, 기억과 감정이 응축된 이 공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죽은 자를 환영하는 포근한 ‘집’인 셈이다.

이 오프렌다는 영혼이 돌아와 머무는 동안,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다시 이승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환영 의식이며, 동시에 남아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기억을 재현하는 행위다.

🍽️ 무덤 앞 피크닉, 죽음과 삶이 어깨를 맞대는 순간
더욱 인상 깊은 장면은 공동묘지에서 벌어진다. 축제 기간 동안 멕시코의 묘지들은 말 그대로 활기찬 파티장이 된다. 조용하고 쓸쓸하게만 느껴졌던 무덤 앞이, 어느 순간 피크닉 장소로 변해버린다. 가족들은 죽은 자의 무덤 주변에 모여 음식을 차리고, 의자나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음식을 나눈다. 생전 그가 좋아하던 타말레, 몰레, 판 데 무에르토, 초콜라테 등이 식탁에 오른다.

이 장면은 보는 이에게는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떻게 무덤 앞에서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을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멕시코 사람들에게 이는 가장 인간적이고 따뜻한 방식의 추모다. 그들은 죽은 이가 실제로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향기’를 통해 추억과 감정을 공유한다고 믿는다. 음식은 기억의 매개체이며, 식사는 추억을 나누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족은 기타를 들고 와 노래를 부르고, 어떤 아이들은 해골 모양의 마스크를 쓰고 장난을 친다.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공간. 그곳에서 죽은 자는 '기억 속의 인물'이 아닌, ‘함께 존재하는 가족’으로 다시 살아난다.

🥖 판 데 무에르토와 설탕 해골, 죽음을 달콤하게 기억하는 방법
죽은 자를 위한 음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판 데 무에르토(Pan de Muerto)라는 빵이다.
겉에는 뼈 모양을 본뜬 장식이 얹혀 있으며, 오렌지 향이 나는 달콤한 브리오슈 스타일이다. 이 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닌, 죽음을 존중하면서도 삶의 일부로 끌어안는 철학의 표현이다. 설탕 해골(Calaveras de azúcar)은 보통 밝은 색으로 꾸며지며, 일부는 죽은 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위트 있는 비주얼은 죽음을 ‘웃음의 대상으로 전환’하려는 멕시코인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상, 이 모든 행위는 죽음에 대한 유쾌한 반응이다.
두려움도 공포도 아닌, ‘기억하고, 웃고, 함께하는 시간’이 바로 디오스 데 로스 무에르토의 핵심이며, 무덤 앞의 만찬은 그 가장 진한 표현이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 며칠 동안, 사람들은 삶의 유한함을 더 강하게 느끼고, 그만큼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화려한 해골과 행진, 그리고 죽음을 축제로 만든 철학


디오스 데 로스 무에르토스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리를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해골 분장일 것이다. 이들은 종종 꽃으로 장식된 해골 가면을 쓰고, 눈두덩에 색을 입히고, 웃는 해골 얼굴을 그린다. 이러한 분장은 두려움보다는 유쾌함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대표적인 상징물인 '라 카트리나(La Catrina)'는 고급 모자를 쓴 여성 해골 형상으로, 멕시코의 풍자와 죽음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숨기기보다, 웃으며 맞이하고 기억하는 방식은 멕시코 문화의 근간 중 하나다. 실제로 이 축제의 핵심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을 즐기는 데 있다. 화려한 퍼레이드, 해골 인형, 전통 음악, 춤은 모두 그런 철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마치 "죽음도 삶의 일부야, 그러니 즐겨야 해"라고 외치는 듯하다.

놀랍게도 멕시코인들은 이 축제를 통해 삶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을 축하하고, 그들이 여전히 우리 삶의 일부임을 느끼는 것이다. 이 철학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이고, 오히려 삶을 더욱 뜨겁게 살아가게 만든다.

최근에는 디오스 데 로스 무에르토스가 멕시코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디즈니의 <코코(Coco)> 같은 영화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멕시코 현지에서 체험하는 이 축제는, 단순한 문화 이벤트가 아니라, 정체성과 공동체의 뿌리를 확인하는 아주 깊은 시간이다. 해골을 웃으며 바라보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아름다움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가족이 무덤을 정성스럽게 가꾸고 꽃을 바르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장례를 넘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묘지를 가꾸는 멕시코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