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미소로 맞이하는 나라, 부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별칭을 가진 부탄은 오랜 시간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해온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입니다. 부탄에서의 죽음은 서구 사회처럼 회피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명상과 웃음으로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그 중심에는 ‘죽음 명상’이라는 독특한 수행 방식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부탄 사람들의 장례 문화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부탄 사람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죽음을 떠올리는 ‘죽음 명상’을 통해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그것이 오히려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가게 해주는 계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은 단순한 비탄의 자리가 아니라, 고인의 삶을 축하하고 기리는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죽음을 되새기며 삶을 더욱 충실히 살 것을 상기시키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부탄의 장례식은 눈물보다 웃음이 어울리는 자리로 바뀝니다.
부탄의 전통 불교 문화는 윤회와 업보의 개념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죽음은 새로운 삶을 향한 전환점일 뿐 끝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죽은 자는 다음 생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존재로서, 슬퍼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격려와 축복으로 배웅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애도보다 웃음과 평온함을 중시하는 장례 풍습으로 나타납니다.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남기거나 감정을 정리하는 자리에서도 종종 농담이 오가고, 장례식 현장에서도 고인의 유쾌했던 일화를 나누며 모두가 웃는 장면이 드물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탄의 죽음에 대한 관점은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삶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죽음을 자연스러운 이치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다는 그들의 태도는, 바쁘고 복잡한 삶 속에서 죽음을 외면하거나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장례식장에서 웃음이 터지는 이유
부탄의 장례식에 처음 참석한 외국인들은 다소 충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조용한 통곡 대신, 사람들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고인의 일화를 되새기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이색적이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에서 웃음이 터지는 이유는 부탄인들의 죽음에 대한 철학과 불교적 세계관, 그리고 공동체 중심의 문화에서 기인합니다.
부탄의 장례식은 일반적으로 사망 후 21일, 49일, 100일, 1주기 등 여러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며, 각 시점마다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의식을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단지 고인을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인의 삶을 함께 나누고 기억하는 ‘이야기’의 시간이 마련됩니다. 특히 고인이 생전에 했던 엉뚱한 행동이나, 웃음을 자아냈던 말들을 회상하며 사람들은 눈물 대신 웃음을 나누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유쾌함이 아니라, 부탄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의 평정’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고인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이 슬픔보다는 평온함과 사랑으로 배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슬픔에 빠진 이들의 에너지가 고인의 환생 여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장례식에서도 가능한 한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부탄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늘 곁에 두고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삶의 자세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장례식도 삶의 연장선상에 놓인 의식 중 하나로 여겨지고, 유쾌한 대화와 웃음이 함께하는 시간은 남겨진 이들에게도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이처럼 부탄의 장례식에서 울음이 아닌 웃음이 터지는 순간들은, 단지 문화적 차이 그 이상으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철학적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창이 됩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행복 철학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행복 국가로 손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 풍요나 관광 자원이 아닌,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삶의 태도에 있습니다. 그 핵심에는 바로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 다시 말해 "죽음을 의식하는 것이 곧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깊이 있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탄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날마다 자각하고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을 이상적인 삶의 자세로 여깁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자,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거울입니다.
부탄의 불교적 세계관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깨달음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무상(無常)'이란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를 뜻하며, 여기에 따라 죽음도 삶의 필연적인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 됩니다. 실제로 많은 부탄 사람들은 하루에 적어도 세 번 이상 죽음을 떠올리라는 수행법을 실천합니다. 이 명상은 ‘마라나사띠(Maranasati)’라 불리는 전통 불교의 죽음 명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죽음에 직면했을 때의 감정과 행동을 떠올리며 삶을 돌아보는 깊은 내면 탐구의 과정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깊고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보통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과 불안, 상실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부탄 사람들은 그 반대입니다.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고, 인간관계와 삶의 방식에 있어 더 신중하고 따뜻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누구에게 용서를 구할까?", "지금 이 대화가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같은 질문은 단지 상상이 아니라, 부탄인들의 일상적 사유입니다.
이 철학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국가의 정책과 문화에도 깊이 녹아 있습니다. 부탄 정부가 세계 최초로 GDP가 아닌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를 국가 발전의 지표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지수는 물질적 부보다 정신적·사회적 안녕을 중심으로 한 삶의 질을 측정합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자주 마주하는 국민일수록, 순간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가고 공동체의 조화와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게 된다는 사실을 부탄은 국가 차원에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교육 현장에도 반영됩니다. 부탄의 많은 학교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명상 교육과 불교 사상, 윤회에 대한 수업을 진행합니다. 어린 학생들도 죽음과 삶의 순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으며, 이는 정서적 회복력과 공감 능력, 삶의 의미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집니다. 외부의 시선에서는 다소 낯설거나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방식은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과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부탄의 이러한 철학은 죽음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려는 현대 사회의 경향과 강하게 대조됩니다. 우리는 죽음을 ‘말하면 안 되는 것’이나 ‘멀리 있는 일’로 취급하고, 슬픔과 공포의 감정에 지배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탄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삶의 스승으로 삼습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진실을 매일 마음속에 품는다는 것은 곧, 삶을 더 진지하고 따뜻하게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죽음을 기억하라’는 부탄의 행복 철학은 단순히 장례 문화나 종교적 의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려는 자세, 타인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삶을 더 온전하게 껴안으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리고 이 철학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해, 부탄은 조용하지만 확고하게 이렇게 답합니다. "죽음을 기억할 때, 진짜 삶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