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이니시에이션 캠프’ 리서치 → 소년에서 남자로 가는 혹독한 성인식

정보주머니1 2025. 6. 25. 23:37

‘움블레로’의 시작 – 외딴 숲에서의 첫 번째 밤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이니시에이션 캠프’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이니시에이션 캠프’

줄루족의 성인식인 ‘움블레로(Umblelo)’는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소년이 남자가 되는 생물학적 전환 이상의 상징적 변화를 의미한다. 남아프리카 퀘줄루나탈 지역의 깊숙한 외딴 숲이나 산 속에서 진행되는 이 의식은, 전통적으로 가족과 공동체의 축복 아래 수 세대에 걸쳐 계승되어온 것이다. 성인식은 대개 12세에서 18세 사이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며, 참여자들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거쳐야만 캠프에 들어갈 수 있다.

소년들은 가족과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상징적인 붉은 흙을 몸에 바르고 캠프지로 향한다. 이때부터 캠프 기간 동안 그들은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채 지낸다. 휴대전화, 신문, 음식물, 깨끗한 물, 심지어 이름조차 일시적으로 잊힌다. 지도자 역할을 맡은 노년의 전사나 장로들은 그들을 이름 대신 “인디도드(umfana)” 즉 ‘소년’이라 부르며, 철저히 신분을 새롭게 각인시킨다.

이곳에서의 첫날 밤은 거의 모든 소년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남는다. 불빛 없는 숲 속, 짐승 울음소리만 들리는 어둠 속에서 그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하며 처음으로 혼자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 첫 번째 밤은 ‘두려움을 꿰뚫는 시련’으로 불리며, 눈물 없이 버티는 것을 큰 미덕으로 여긴다. 가끔은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소년도 나오며, 이 경우 지도자는 단호하게 그를 진정시키거나 집으로 돌려보낸다.

이 첫 단계를 통해 줄루 사회는 용기와 자기 절제의 가치를 가르친다. 단지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며 자아를 시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어 해가 떠오를 때, 소년들은 더 이상 이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움블레로’의 진정한 첫발이다.

 

시련의 나날 – 육체, 정신, 전통의 세 겹 훈련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이니시에이션 캠프’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이니시에이션 캠프’

성인식 캠프는 대개 2주에서 1개월가량 지속된다. 이 기간 동안 소년들은 매우 혹독한 규율 아래 놓이게 된다. 하루 일정은 동틀 무렵부터 시작되며, 기본적인 신체 훈련, 단식, 노동, 그리고 줄루 전통지식의 습득 등으로 짜여 있다. 이곳에서는 단순한 체력단련이 아니라, 전사로서의 자질,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몸에 새기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루의 첫 번째 과제는 ‘용맹 행진’이다. 소년들은 맨발로 산길을 오르내리며 구령에 맞춰 걷고 뛰어야 하며, 중간에 포기하면 모욕적인 벌을 받는다. 이어서 벌어지는 단식 훈련은 한 끼 식사만 허용되며, 그마저도 옥수수죽이나 뿌리류 등 영양분이 거의 없는 음식이다. 극한의 허기 속에서도 인내와 절제를 배운다.

오후가 되면 ‘구술 수업’이 이어진다. 장로들은 불가에 앉아 줄루의 역사, 신화, 조상 숭배, 가문 계보, 공동체 윤리 등을 이야기하며, 소년들은 이를 암기해야 한다. 가령 샤카 줄루의 전쟁술, 조상의 지혜, 가족의 부끄러움을 가려야 하는 남성의 명예에 대해 교육받는다. 이 과정을 통해 개인보다 공동체의 존엄과 조화를 우선시하는 줄루 정신이 심어지는 것이다.

캠프 후반에는 가장 혹독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침묵의 밤’이라 불리는 날엔 소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장작더미 옆에 앉아,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는 선언문을 마음속으로 읊는다. 이 시간 동안 그들이 겪은 내면의 혼란, 통증, 용서, 성장의 서사가 침묵 속에서 정리된다. 이 시점에서 지도자들은 소년들 각각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평가하고, 성인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를 판별한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통합적인 인간의 재구성이다. 줄루족에게 성인식은 ‘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형성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는 법, 공동체의 어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이 기간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귀환과 환생 – 새로운 이름과 공동체의 축복

 

마침내 이니시에이션 캠프가 끝나는 날, 줄루 마을 전체는 흥분과 기대에 가득 찬다. 이때부터는 소년들이 아닌, ‘이시노사(Isinoza)’라 불리는 새로운 성인의 귀환이다. 한 달 전, 상처투성이의 어린아이로 숲속에 들어간 이들이, 지금은 단단해진 눈빛과 말투, 강인한 체구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환생’에 가까운 사건이다.

귀환식은 마을 광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의식으로, 북소리와 전통 춤이 울려 퍼지고, 가족들은 노래와 음식으로 새 남자의 탄생을 축하한다. 이때 소년은 새 이름을 받는다. 그 이름은 조상의 영혼이 깃든 언어로 주어지며, 그가 어떤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상징이다. 예컨대 “응콜로시(Nkholosi)”는 ‘사자의 힘을 지닌 자’, “부예카(Buyeka)”는 ‘조용한 해결자’라는 뜻을 가진다.

이 귀환식에서는 성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적 맹세도 주어진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가족과 조상을 배반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수치가 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서약은 줄루 남성의 기본 가치로 자리 잡는다. 성인으로 받아들여진 순간부터 그는 마을 회의에 참석할 수 있으며, 결혼과 가산 상속권도 얻는다. 즉, 법적·사회적 책임이 부여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귀환 이후에도 한동안 침묵의 기간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변화를 증명해야 한다는 문화적 관습에서 비롯된다. 가족들은 그가 달라진 태도와 성실함을 통해 진정한 남자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어떤 경우엔 캠프를 무사히 마친 자에게 특별한 목걸이나 창이 수여되기도 한다. 이는 용기와 명예의 상징이며, 후배들이 그를 존경하는 기준이 된다.

결국 줄루족의 성인식은 단지 고통의 의식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을 탄생시키는 고도의 문화 시스템이다. 이러한 전통은 단절되지 않고 현대 남아프리카에서도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계승되고 있다. 물론 오늘날에는 위생 문제, 강압성 등 논란도 있지만, 본래의 의미와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존중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