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으로 살아나는 북유럽 전설 – ‘Up Helly Aa’의 기원과 역사
스코틀랜드 최북단에 위치한 셰틀랜드 제도(Shetland Islands)는 한때 바이킹들의 거점이자 노르웨이 문화가 짙게 남아 있는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1월 말,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불꽃으로 가르는 독특한 축제가 열린다. 바로 ‘Up Helly Aa’다. 이 이름만 들어도 신비롭고 강렬한 이 축제는 단순한 불꽃놀이가 아닌, 노르드 바이킹 전사의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는 상징적인 행사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바이킹과 이 축제의 ‘가짜 바이킹’들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연결되는 고리도 있지만, 사실 많은 부분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주의와 지역 문화의 재해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Up Helly Aa’는 노르웨이의 통치 아래 있었던 셰틀랜드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한 축제지만, 지금의 형태는 비교적 최근에 자리 잡았다. 19세기 중반, 영국 전역에서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많은 지역에서는 고유의 전통이 사라지는 위기에 놓였다. 셰틀랜드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자신들만의 지역 색’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Up Helly Aa’는 전통과 창의성이 결합된 새로운 지역 축제로 탄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횃불 행진이 중심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행렬의 주제는 점차 ‘바이킹’이라는 상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는 셰틀랜드의 바이킹 유산을 부각시키려는 지역민들의 의식적 선택이었으며, 노르드 전사 복장을 입고 대형 바이킹선을 끌고 가는 현재의 퍼레이드 형태가 완성된 것도 이 무렵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축제가 실제 고대 바이킹들의 축제와는 큰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현대적 의상, 불꽃놀이, 가짜 전함, 유쾌한 축제 분위기 속에 담긴 ‘바이킹 정신’은 오히려 현대인의 상상과 창조의 산물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축제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Up Helly Aa’는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재조명하고, 주민들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매년 열리는 이 축제를 위해 수개월 동안 의상 제작, 배 제작, 안무 준비가 이어지며, 이는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지역 전체가 참여하는 커뮤니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결국, ‘Up Helly Aa’는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보존한 축제라기보다는,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짜 바이킹이라 해도 그들이 불꽃 속에서 재현하는 열정은 진짜 전사 못지않다. 이 축제는 단지 불을 밝히는 행사가 아닌, 정체성과 자부심을 불태우는 셰틀랜드의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가짜 바이킹’들의 행렬 – 퍼레이드와 의식 속으로
‘Up Helly Aa’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불타는 바이킹선과 그 앞을 걷는 남성들로 구성된 화려한 행렬이다. 이들은 모두 정교한 바이킹 복장을 입고, 횃불을 들고 겨울밤의 도심을 행진한다. 이 ‘가짜 바이킹’들의 행렬은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며, 그 중심에는 ‘Guizer Jarl’이라 불리는 축제의 리더가 있다. 이 인물은 매년 선정되며, 역사적 바이킹 전사의 이름을 빌려 등장한다. Guizer Jarl과 그가 이끄는 무리는 ‘Jarl Squad’라 불리는 집단으로, 축제를 위해 수개월 간 의상과 무기, 깃발,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이들의 복장은 단순한 분장이 아니다. 실제 북유럽 바이킹 전사의 고증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의상으로, 갑옷, 투구, 방패, 망토까지 정교하게 제작된다. 몇몇 참가자들은 직접 갑옷을 제작하기도 하며, 이는 단순한 취미 이상의 문화적 헌신을 의미한다. 바이킹선도 마찬가지다. 수개월에 걸쳐 제작되는 이 대형 전함은 실제 목선처럼 정교하게 조립되며, 때로는 전통 노르드 문양이나 신화적 상징이 새겨져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론, 축제의 마지막에는 이 멋진 배가 불길에 휩싸이며 장렬하게 ‘소멸’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수백 개의 횃불이 도심을 붉게 물들이며, 군악대와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행렬은 마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을 주민들은 길가에서 열광하며 이들의 행진을 지켜보거나, 축제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특히 Guizer Jarl Squad는 각종 지역 학교나 행사장을 방문해 어린이들에게 바이킹 역사와 전통을 소개하는 등 교육적인 역할도 맡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행사가 철저하게 지역 공동체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이다. 참가자는 모두 셰틀랜드 주민으로, 외부인은 이 퍼레이드에 참여할 수 없다. 이는 전통의 순수성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규칙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Up Helly Aa’는 단지 관광객을 위한 쇼가 아닌, 지역 사회의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기제로서 기능한다. 그 결과, 이 축제는 외부인에게는 이색적이고 신비한 문화 체험이 되며, 지역민에게는 일 년 내내 기다려온 자긍심의 무대가 된다.
결국 ‘가짜 바이킹’들의 행렬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이것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만드는 ‘이야기’이고, 셰틀랜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종의 예술이다. 가짜이지만 진심으로, 재현이지만 창조적으로 만들어진 이 행렬은 현대 문화가 전통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시다.
전통인가 관광 자산인가 – Up Helly Aa의 문화적 의미와 논란
‘Up Helly Aa’ 축제는 매년 수천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셰틀랜드 제도의 대표적인 겨울 관광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국제적 행사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 이면에는 문화적 정체성과 역사 왜곡, 그리고 성별 포용성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특히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Up Helly Aa’는 단순한 지역 축제를 넘어, 전통의 재해석과 문화 보존, 사회 변화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가장 두드러진 논쟁 중 하나는 ‘가짜 바이킹’이라는 비판이다. 이는 축제의 역사적 정확성보다 시각적 화려함과 관광 상품화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에서 비롯된다. 실제 바이킹 역사와는 차이가 있는 복식, 의례, 상징들은 일종의 ‘문화 연극’으로 여겨지며, 일부 학자나 비평가는 이를 ‘로맨티사이징(Romanticizing)’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역민들은 축제를 단지 역사 재현이 아닌, ‘현대의 문화 표현’으로 인식한다. 그들에게 있어 ‘Up Helly Aa’는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징을 빌려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인 셈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쟁점은 ‘포용성’이다. 오랫동안 ‘Up Helly Aa’는 남성 중심의 행사로 운영되었으며, Guizer Jarl Squad를 포함한 퍼레이드 주요 참가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이 성별 제한은 점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2020년 이후 일부 지역 Up Helly Aa(예: Lerwick 외 지역)에서는 여성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규칙이 변경되었다. 이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으며,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관광객의 급증도 양날의 검이다.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축제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축제의 본래 목적이 지역 정체성과 결속이라면, 상업적 요소가 너무 가미될 경우 공동체 내 구성원들의 참여 동기나 축제의 진정성이 희석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셰틀랜드 주민들은 외부 참여는 환영하되, 축제의 핵심은 언제나 지역민의 주도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Up Helly Aa’는 단지 불꽃과 퍼레이드로 구성된 이벤트가 아니다. 이는 문화와 전통, 현대적 가치와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정되고 있는 살아 있는 축제다. 역사적으로 정확한가, 가짜인가의 이분법보다 중요한 것은 이 축제가 지역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들이 어떻게 이 유산을 계승하고자 하는지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불타오르는 ‘Up Helly Aa’는, 우리에게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는 스코틀랜드 셰틀랜드의 불빛이다.